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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정보통

고대 천문학의 중심 원리

by 서예랑(주) 수달 2023.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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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코스모스는 말그대로 아름다운 질서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를 설명하는 천동설도 일상에서 지각하는 사실과 잘 들어맞는 이론이었다. 고대 천문학 이론의 바탕에는 세가지 원리가 있었다. 첫째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천상계와 지상계, 둘째 천체의 동력인 천구, 셋째 천체의 자연 운동은 모두 원운동이라는 원리다. 이를 고대 천문학의 중심 원리 central dogma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그런데 천체관측 기록을 바탕으로 원리에 어긋나는 두가지 예외가 발생했다. 첫재는 지구와 행성(당시에는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으로 구성되는 5행성 외에 태양과 달도 행성으로 여겼다) 사이의 거리각 변화한다는 사실이었으며 둘째는 행성이 불규칙한 운동을 한다는 점이었다. 둘 다 세번째 원리인 일관된 원운동과 맞지 않는 현ㄴ상이다. 행성을 혹성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혹은 미혹한다는 뜻이다 .이름 그대로 혹성이 항성 사이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순행하는 속도가 일정하지 않고 궤도상에서 한동안 멈추기도 하며 심지어는 반대 방향으로 역행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행성의 불규칙 운동이라는 점과 관련하여 플라톤은 자신이 설립한 학교인 아카데메이아에서 현상을 구하는 일saving the phenomena 다시말해 겉으로 보기에 불규칙한 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일을 제자에게 과제로 내줬다고 한다. 이는 고대 천문학의 최대 난제aporia이기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독소스가 제기한 동심천구설을 채용했다. 동심천구설은 행성 하나의 움직임을 서로 다른 각도의 회전축을 지닌 여러 천구 운동의 결합으로 설명하려 한 시도였다. 각 천구는 원운동을 하지만 이를 합치면 마치 불규칙한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론이었다. 에우독소스는 항성 천구 외에 26개의 천구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55개로 늘렸다. 천구 개수가 늘어난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각 천구가 자신보다 하위에 배치된 별의 첫 번재 천구를 자신과 동일한 위치로 되돌리는 기능을 하는 역행 천구를 더했기 때문이다. 동심천구설은 행성의 불규칙 운동을 교묘한 논리로 설명해내기는 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동심천구설이 지닌 가장 큰 결함은 지구와 행성 간 거리가 변화한다는 관측기록(예를들어 화성과 금성의 밝기 변화, 개기일식과 금환식의 차이 등)을 설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단점을 극복한 것이 바로 주전원설이다. 주전원설은 아폴로니오스와 히파르코가 제기한 것으로 훗날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에 집대성됐다. 주전원설의 요점은 이심원, 주전원, 동시심이라는 세가지 보조가설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이심원이란 지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둔 원궤도를 말한다(다르게 말하면 지구가 원궤도의 기하학적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셈이다). 행성 궤도가 이심원이라면 지구와 행성 간의 거리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과 지구에서 바라보는 행성의 이동속도가 변화한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천체의 자연 운동인 원운동을 위배하지 않으면서 지구와 행성간 거리의 변화와 행성 순행 속도의 변화를 설명해낸 것이다.

 

다음으로 주전원이란 지구를 중심으로 한 1차 원궤도(대상)상의 한 점을 중심으로 삼은 작은 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주전원상에 행성을 배치해 대원과 주전원이라는 2가지 궤도 운동을 결합함으로써 행성이 멈추거나 역행하는 등의 불규칙한 운동을 하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했다. 동시심이란 이심원의 지름 위에 있는 점으로 이심원의 중심뿐만 아니라 지구와도 떨어져있는 제3의 점이다. 행성은 동시심에 대해 일정한 각속도(회전속도)로 운동한다. 다시 말해 동시심은 행성이 원운동을 한다는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된 가설이다. 여기에 미세 주전원(주전원상에 중심을 둔 작은 주전원)을 더함으로써 주전원설은 더욱 정확해지는 동시에 복잡해져갔다. 

 

우리가 보통 천동설(지구중심설)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체계다. 오늘날에는 천동설이라고 하면 대표적인 비과학적 논리처럼 바라보지만 사실 주전원설에는 비합리적인 요소가 전혀 없으며 충분히 과학적인 이론이었다. 주전원설은 행성의 불규칙 운동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관측 결과와 매우 잘 들어맞았다. 즉 정성적으로도 정량적으로도 대단히 우수한 이론이었다.

 

그 후에 천문학자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설명체제를 패러다임으로 삼아 이론을 더욱 정밀하게 만들어나갔다. 그 결과, 코페르니쿠스의 시대(16세기)에는 주전원 수가 80개를 넘었으며 이론도 계속 복잡해져갔다. 천동설이 지니는 유일한 결점은 동시심이라는 기교를 도입함으로써 지구에서 바라본 행성의 운동이 모두 원운동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연관의 중심적인 원리를 위배했다는 부분이다. 이처럼 이론이 복잡하다는 점과 원리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그리스의 코스모스가 지닌 옥에 티였으며 훗날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태양중심설)을 구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의 우주론은 천체의 운동을 논하는 천문학과 지상의 운동을 논하는 자연학(훗날의 물리학)으로 나눌 수 있다. 후자의 패러다임으로서 기능한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을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했으며 그 핵심은 운동론이었다. 단 여기서 말하는 운동이란 장소의 변화(좁은 의미의 운동)뿐만 아니라 양의 변화(생장과 쇠멸)와 질의 변화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즉 고대 그리스에서는 돌이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과 식물이 자라나는 현상을 모두 운동으로 간주했으며 이를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이행하는 일이라고 봤다. 예를들어 씨앗(가능태)은 성장해서 나무(현실태)가 되며, 돌이 낙하하는 현상 또한 가능성이 현실로 바뀌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서 운동이란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향하는 목적론적인 과정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지상의 물체는 땅, 물, 불, 바람이라는 4원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 운동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수직 운동이다. 또한 4원소에는 각각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자연스러운 장소가 정해져있다. 불은 월하게의 가장 윗부분, 다시말해 천구 근처가 자연스러운 장소다. 그 아래가 바람의 장소이며 그보다 아래에 물의 장소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아래에 있는 지구의 중심이 땅의 장소다. 즉, 우주에는 천상과 지상의 구분뿐만이 아니라 지상계 안에서도 장소에 따른 구분이 있다는 ㄸ스이다. 공간은 불균등하고 불균일하며 질적 차이를 지니는 여러 장소로 구성되어 있다.

 

지상 물체의 자연 운동은 물체가 자연스러운 장소로 돌아가려하는 자연스러운 경향에 의해 발생한다. 불과 뜨거운 공기는 하늘로 올라가며 물은 낮은 곳을 향해 흐르고 돌은 지구의 중심을 향해 떨어진다. 이 모든 현상은 물체가 각각 원래 있어야 할 장소로 돌아가려 하는 자발적인 운동이며 잠재적인 기능성이 현실이 되는 과정 또는 목적이 실현되는 과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론은 이러한 목적론적인 설명을 기반으로 성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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