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시만드로스가 남긴 논고에 관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프로세스를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배운다. 아웃풋, 즉 최종적인 결론은 마치 생선회 접시에 장식으로 쓰인 식재료 같은 것이어서 거기엔 배울 만한 핵심이 없다. 그러니 사고 과정의 묘미를 맛보지 않고서는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가 허공에 떠있다고 주장했다는 결론을 아는 데 그쳐 그런거 당연하잖아..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듣는데 시간을 썼다니하는 감상밖에 떠올릴 수 없다. 이런 걸 배우는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거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아낙시만드로스 외에도 프로세스에서 배울 점은 풍부하지만 아웃풋에섯는 배울게 거의 없는 철학자들이 많다 .데카르트가 그 전형적인 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은 아무리 옳은지 그른지 의심한다 해도 지금 여기에서 사고하는 나의 정신이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는 의미인데 현대사회에서 평범하게 시민으로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가 느닷없이 이런 말을 듣는다면 아 그거야 그렇죠라는 심심한 반응 정도 밖에 보일 수 없다 .이와 같이 아무리 유명한 데카르트의 말과 생각이라 해도 아웃풋에서는 그다지 얻을 만한 배움이 없을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중요하지 않은 이유
프로세스의 관점에서 보면 데카르트의 경우도 아낙시나만드로스와 마찬가지로 사고 과정에서 배울점이 풍부하다. 평론의 신이라 불리는 고바야시 히데오는 데카르트의 방법설이 데카르트의 잦서전과 다름없다고 단언했다. 나는 이렇게 의심하고 또 생각해 왔다는 고찰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는 것이다. 정말 날카로운 지적이다.
우리는 데카르트가 어떻게 고민하고 생각하여 마침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는지를 앎으로써 비로소 데카르트의 철학을 배운다. 그렇다면 초심자를 대상으로 한 교과서에 그 고찰 과정이 소개되어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정통 교과서는 데카르트나 남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유명한 아웃풋을 소개하고 이 아웃풋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아주 간단히 언급하는 수준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런 이야기는 전문가들끼리만 통할 뿐 보통 사람들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바로 여기서도 초심자로 하여금 철학에 향했던 관심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을 찾아볼 수 있다.
저명한 철학 교수가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라고 아무리 강조한들 왜 중요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 철학은 아무래도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학문을 지속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지적 흥미가 솟아날 리 만무하다. 초심자가 철학에 쉽게 좌절하는 이유는 철학자가 남긴 아웃풋을 서둘러 습득하고 싶지만 아웃풋이 너무 진부하거나 잘못된 내용이어서 배우는 의미를 전혀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초심자는 아무래도 쉽고 빠르게 배우고 싶어 한다. 당연히 핵심만 얼른 배우길 원하니 결과적으로 진정한 배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좌절한다. 시간을 그리 많이 투자할 수 없는 초심자이기에 성급히 이해하려하지만 이러한 태도로 철학에 다가서면 결국 좌절만 할 뿐이다. 일종의 딜레마다. 특히 이 문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에 전형적으로 해당하는 문제다.
위에서 말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느닷없이 아웃풋만을 알고 싶다거나 가르쳐주고 싶다는 욕구를 억누르고 오히려 그 아웃풋을 주장하는 데까지 다다른 사고 과정 혹은 문제에 마주한 태도 등을 이야기식으로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지적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50가지 철학, 사상이 그러한 사고 과정과 태도를 간접 체험하게 해주는 교두보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지적 전투력 극대화하는 이야기
about 사람
1. 타인의 시기심을 관찰하면 비즈니스 기회가 보인다_르상티망(프리드리히 니체)
르상티망을 여느 철학 입문에서처럼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감정. 한마디로 시기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니체가 제시한 르상티망은 우리가 시기심이라고 여기지 않는 감정과 행동까지도 포함한 조금 더 넓은 개념이다.
이솝우화에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가 있다. 여우가 먹음직스러운 포도를 발견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손이 닿지 않았다. 결국 이 여우는 이 포도는 엄청 신 게 분명해. 이런걸 누가 먹겠어!라며 가 버렸다. 이는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의 전형적인 반응을 보여준다. 여우는 손이 닿지 않는 포도에 대한 분한 마음을 저 포도는 엄청 시다고 생각을 바꿈으로써 해소한다. 니체는 바로 이 점을 문제로 삼아 우리가 갖고 있는 본래의 인식 능력과 판단 능력이 르상티망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개인은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예속, 복종한다.
-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 판단을 뒤바꾼다.
이 두가지 반응 모두 우리가 우리 자신답고 풍요로운 인생을 보내는데 큰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순서대로 살펴보자.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 르상티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예속하고 복종함으로써 그 감정을 해소하려고 한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명품 가방을 갖고 있는데 자신만 없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물론 누군가는 명품 가방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물건이 아니며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같은 수준의 명품가방을 구입함으로써 자신이 품고 있던 르상티망을 해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는 특별히 명품 가방이나 옷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페라리 같은 고급 자동차나 리처드 밀 같은 명품 시계의 세계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이들 고급 브랜드 상품이 시장에 제공하고 있는 편익을 르상티망의 해소로 볼 수 있다. 르상티망을 품은 개인은 르상티망을 해소하기 위해 상품을 구입하기 때문에 르상티망을 새로 만들어 내면 낼수록 시장의 규모 또한 커진다 .명품 의류 브랜드나 고급 자동차 회사가 매년 새로운 컬렉션과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는 이유는 르상티망을 꾸준히 만들어 내기 위해서다. 최신 상품을 끊임없이 시장에 내보냄으로써 오래되거나 유행이 지난 물건을 갖고 잇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르상티망을 주입하는 것이다 .르상티망에는 제조원가가 없기 때문에 아이디어만 있다면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무한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에 비싼 값을 매기므로 돈을 못 벌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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