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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정보통

페르소나?

by 서예랑(주) 수달 2023. 3. 4.

About 카를 구스타프 융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 초기에는 프로이트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나 머지않아 결별했고 그 후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분석심리학을 창시했다. 카를 구스타프 융의 연구는 심리학뿐만아니라 인류학, 고고학, 문학, 철학, 종교 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인격personality은 그 자체의 정의로 볼 때 본래 짧은 시간에 크게 변화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상황이나 주변과의 관계를 위해 인격을 달리 포장해야 할 때가 있다. 이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사람이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이다. 그는 인격 가운데서 외부와 접촉하는 외적 인격을 페르소나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페르소나는 원래 고전극에서 배우가 사용하는 가면을 뜻하는데 융은 페르소난를 한 사람의 인간이 어떠한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는가에 관한, 개인과 사회적 집합체 사이에서 맺어지는 일종의 타협이라고 정의했다. 즉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가면이 페르소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실제 타협의 범위가 그다지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어디까지가 가면이고 어디까지가 얼굴인가하는 물음이 따라다닌다.

 

팬터마임을 예술의 영역까지 끌어올려 침묵의 시인이라고 불린 배우 겸 연출가 마르셀 마르소의 퍼포먼스에는 자기가 쓰고 있는 가면이 벗겨지지 않으 애를 먹은 피애로가 등장한다 .마르셀 마르소의 연기 자체가 박진감 넘치기도 하지만 이 쓰고 있는 가면이 벗겨지지 않는 이야기에는 우리의 등줄기를 서늘하게하는 무언가 본질적인 것이 숨어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작곡가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는 이탈리아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한 오페라인데 극 중의 극에서 주인공은 극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해 아내를 죽이고 만다. 이는 마르셀 마르소의 퍼포먼스와는 반대로 본래 가면을 쓰고 지내야 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그만 얼굴을 노출시키고 만 상황이 얼마나 큰 위험을 불러올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가면과 맨 얼굴의 경계가 애매해진다는 모티브에 우리가 끌리는 이유는, 자기 정체성이나 인격이 실제로는 매우 취약하며 외부 환경에 따라 왜곡되기도 하고 감추고 싶었던 무의식이 표출될 염려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소속된 조직의 분위기에 따라 나의 실제 성격과는 다른 가면을 썼던 시절이 있었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나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은 내가 매우 중립적이고 계측이나 계급을 싫어하며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로 근성론과 감정론에 치우친 전체주의를 혐오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다. 그런 내가 계측 의식이 매우 강하고 군대처럼 권위주의적인 행동 양식을 요구하는 회사, 또 근성론과 전체주의가 합리성에 앞서는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면서 조직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 나답게 행동하기란 무척 어려웠다.

 

무서운 것은, 나답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면서도 나 자신은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부모님, 중학교 친구들과 있다가 업무 전화가 와서 통화하는 목소리를 들은 부모님, 중학교 친구들은 전혀 너 같지 않다며 놀란 적이 있다.그렇게 나 자신이 변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나 또한 놀랐다. 지금에 와서는 그당시 내가 본래 나의 모습과 상당히 다른 가면을 무리해서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에는 지적받기 전까지 깨닫지 못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 즉 페르소나와 진짜 자신과의 불일치가 부정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사실상 모든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사람의 인격은 다면적이어서 우리는 실제로 어떤 장소에서 걸치고 있던 페르소나를 다른 장소에서는 또 다른 페르소나로 바꿔 쓰면서 어떻게든 인격의 균형을 유지해 살아간다. 인간이 어느 정도 마음 편히 살아가고자 한다면 일종의 다중인격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한 테크놀로지의 등장이 이를 무척 어렵게 만들고 있다. 바로 휴대전화, 스마트폰이다.

 

사람은 소속된 회사나 학교, 가정, 친구관계 또는 동호회나 사교 모임 등과 같은 여러 커뮤니티 속에서 다양한 입장과 역할을 갖고 있게 마련이지만 그들이 반드시 일관된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낮에는 부하들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무서운 임원이 밤에는 친구들과 모여 노래방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길고양이들의 아빠일지도 모른다.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인격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성립되고 유지되어 온 측면도 없지 않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입장이나 역할을 종적인 사일로silo(기업 내의 어떤 부문이나 부서가 외부와 정보를 공유하거나 연계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고립된 상태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개인이 속한 다양한 입장과 소속, 즉 여러개의 페르소나를 뜻함)라고 생각할 경우, 그 사일로를 횡적으로 연계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 사일로 자체는 자신이 만들고자 해서 만드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인생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어느 사이엔가 만들어진 것도 있다. 반드시 모든 사일로를 충분히 납득시키고서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사일로들이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룸으로써 사람이 인격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휴대전화가 등장하면서 사일로의 강렬한 횡적 연계가 시작된듯 하다. 가령, 집단 따돌림은 아마도 고대부터 있었을 텐데 요즘와서 특히 문제의 심각성이 커진 이유는 아이들이 학교와 가정이라는 두 개의 사일로를 구분해 행동하지 못하게 된 데 있다.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는 학교에서 아무리 심한 일을 당해도 집에 돌아오면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학교와는 일단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런데 휴대전화라는 가상의 횡적 연계 매체가 학교라는 사일로에서 심리적으로 분리되기를 바라는 아이에게 그런 상황을 허용해주지 않는다.

이는 회사원이 가정과 직장, 그리고 개인이라는 세 가지의 인격요소를 구분해서 생활하기가 어려워진 것과도 같은 상황이다. 물리적으로 어느 장소에 있든 또한 어떤 사회적 입장에 있든 회사원으로서의 페르소나와 가정의 일원으로서의 페르소나가 따라다닌다. 이렇게 되면 여러 개의 사일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 잘 살아가야 할 인류가 고대에서부터 지속해 온 생존 전략 자체의 기능을 잃게 되는데 사실 이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다.

 

만약 이대로 계속 흘러간다면 다다르게 될 결론은 단순하다. 여러개로 분산되어 있는 사일로를 균형있게 유지하던 전략이 더 이상 기능을 못 하고 사일로가 하나하나 쇠퇴해 간다. 따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일로나 스트레스 수치가 높은 사일로에서부터 차츰 도망치게 된다. 도망친다는 키워드는 앞으로의 인생 전략을 새로 구상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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