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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정보통

몰입flow,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by 서예랑(주) 수달 2023. 3. 7.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Holocaust다. 앞서 소개한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가 관료제의 특징인 '과도한 분업 체제'덕에 가능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나 아렌트가 이러한 가설을 제시한 1960년대 무렵까지는 주로 유대인 학살의 원인을 독일의 국민성과 나치의 이데올로기에서 찾는 해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는 그 해석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홀로코스트가 나치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가능했다는 논조는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사고관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를 부정하고 독일 아닌 다른 국가의 국민에게도, 그리고 나치 이외의 다른 조직에도 그러한 비극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히틀러 같은 광신적인 지도자가 중추가 되어 깃발을 흔드는 것만으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실제로 총이나 독가스를 이용해 자신의 손으로 죄도 없는 사람들을 벌레처럼 죽인 사람들은 나치의 지도자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일반 시민이었다. 이때 그들의 자제심과 양심은 왜 작동하지 않았을까? 한나 아렌트는 '분업'에 주목한다. 유대인 명부 작성을 비롯해 검거, 구류, 이송,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많은 사람이 분담하기 때문에 시스템 전체의 책임 소재는 애매해지고 책임을 전가하기에 아주 수월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저는 그저 명부를 작성했을 뿐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든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죽이지는 않았어요. 단지 이송열차를 운전했을 뿐이에요" 등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었다. 이러한 체계 구축에 주도적으로 역할을 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구성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도록, 될 수 있는 한 책임 소재가 애매하게 분단된 체계를 구축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고 술회했다. 그 악마 같은 통찰력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밀그램 교수의 실험 결과는 사람이 집단 내에서 어떤 일을 할 때야말로 그 집단이 지닌 양심이나 자제심이 가동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컴플라이언스compliance(조직 구성원 모두가 제반 법규를 철저하게 준수하도록 사전적, 상시적으로 통제하고 감독하는 체제)위반이 속출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밀그램의 실험결과가 시사하는 바를 더욱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한편 밀그램 교수가 실시한 아이히만 실험은 우리에게 희망의 빛도 함께 가져다 준다. 권위의 상징인 흰 가운을 입은 실험 담당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렸을 때 피험자 100퍼센트가 150볼트라는 상당히 낮은 단계에서 실험을 중지했다는 실험 결과를 떠올려 보자. 이 사실은 자신의 양심과 자제심을 자각시키는 아주 조그마한 지지라도 받으면, 사람은 누구나 권위에 대한 복종을 멈추고 양심과 자제심에 근거한 행동을 취한다는 걸 말해준다. 밀그램 교수가 실시한 '아이히만 실험'의 결과에서 인간은 권위에 놀랄 정도로 취약한 본성을 지니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권위에 대항하는 약간의 반대 의견 또는 양심과 자제심을 부추기는 작은 도움만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인간성에 근거해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이는 조직 전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이것은 잘못된 게 아닌가!" 라고 맨 먼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정리해보자. 현대와 같이 분업이 표준화된 사회에서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조차 못한 채 거대한 악행에 가담하고 있기 쉽다. 수많은 기업에서 행하고 있는 은폐와 위장은 바로 분업에 의해 가능했다. 이러한 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떠한 체계에 속해 있는지, 자신이 하고 있는 눈앞의 일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짚어 보고 공간적, 혹은 시간적으로 큰 테두리 안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후에 무언가 개혁이 더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용기를 내어 '이건 이상하지 않은가? 잘못된게 아닌가?'라고 자기 의견을 적극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제 일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까?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까? 이것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연구 주제였다. 오늘날 자신의 능력 발휘나 만족감에 대해 혹은 조직의 리더로서 어떻게 구성원들의 역량을 끌어올려 일에서 만족감을 갖게 할 것이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항상 품고 있는 질문일 것이다.

 

칙센트미하이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아주 단순한 접근법을 선택했다. 즉, 미술가나 음악가 같은 창조적인 전문가, 외과의나 사업가, 스포츠 선수, 또는 체스 등의 세계에서 일을 사랑하고 활약하고 있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한 것이다. 이들 중에는 더바디샵 차업자인 애니타 로딕과 소니의 공동 창업자인 이부카 마사루도 포함되어있다.

 

수없이 많은 인터뷰를 마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각자 분야가 다른 고도의 전문가들이 일에 흠뻑 빠져 있는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 종종 '몰입flow'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그들 전문가가 사용한 이 용어를 그대로 가져와 나중에 '몰입 이론'으로 널리 알려진 가설을 정리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절대적 몰입의 상태에 들어가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몰입 flow

1. 과정의 모든 단계에 명확한 목표가 있다.

: 목적이 불명확한 일상생활에서 생긴 일과는 대조적으로, 플로flow 상태에서는 항상 해야 할 일을 확실히 알고 있다.

 

2. 행동에 대해 즉시 피드백한다.

: 플로flow 상태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어느 정도 잘하고 있는지를 자각하고 있다.

 

3. 도전과 능력이 균형을 이룬다.

: 자신의 능력에 맞는 도전을 하고 있으며 너무 쉬워서 지루할 일도, 너무 어려워서 도망치고 싶은 일도 없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4. 행위와 의식이 융합한다.

: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다.

 

5. 집중을 흐트러뜨리는 일은 의식에서 배제한다.

: 완전히 몰입해서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이나 고민이 의식에서 배제되어있다.

 

6.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 완전히 몰입해 있어서 집중력과 능력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대문에 실패에 대해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만약 마음속에서 불안이 밀려오면 flow상태가 중단되어 조절 감각을 잃고 만다.

 

7. 자의식이 소멸된다.

: 자신의 행위에 상당히 몰입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평가에 신경을 쓰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몰입flow이 끝나면, 반대로 자신이 크게 성장했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8. 시간 감각이 왜곡된다.

: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은 채 몰입flow하기 때문에 몇 시간이 몇 분처럼 느껴진다. 혹은 정반대로 스포츠 선수 같은 경우는 어느 한 순간이 늘어나 긴 시간처럼 느낄 때도 있다.

 

9. 활동이 자기 목적이 된다.

: 몰입 상태로 이끄는 체험을, 의미가 있든 없든 단지 몰입flow 체험에서 오는 충족감을 위해 즐길 수 있다. 예술이나 음악, 스포츠는 생활에 꼭 필요하지는 않아도 자체의 만족감을 위해서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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