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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정보통

악마의 대변인

by 서예랑(주) 수달 2023.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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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대변인이란 다수파를 향해 의도적으로 비판과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을 뜻한다. 여기서 '의도적'이라는 말은 원래 청개구리 기질이 있어 다수파의 의견에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이 같은 '역할'을 맡는다는 의미다. 악마의 대변인은 존 스튜어트 밀이 만든 용어는 아니고 원래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하는 말이었다. 가톨릭에서 사후에 모범적인 신앙인을 복자(福者)로 인정하는 시복(諡福)과 복자를 성인으로 인정하는 시성을 심의할 때 일부러 후보자의 결점이나 미심쩍은 점을 지적하는 역할이 있는데 이것을 바로 '악마의 대변인'이 하는 일이었다. 이 역할은 1983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폐지되었다.

 

 

그렇다면 악마의 대변인이라는 용어가 왜 존스튜어트 밀과 연관되어있는것일까? 존 스투어트 밀은 저서 <자유론>에서 건전한 사회를 실현하는데 '반론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거듭 지적했다.

 

 

어떤 의견이 어떠한 반론에도 논박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옳다고 상정되는 경우와, 애초에 비판을 허용하지 않을 목적으로 미리 옳다고 상정되는 경우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고 반증할 자유를 완전히 인정해 주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의견이 자신의 행동 지침으로서 옳다고 내세울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이다. 전지전능하지 못한 인간은 이것 외의 방법으로는 자신이 옳다고 내세울 수 있는 합리적인 보증을 얻을 수 없다.  - 존 스튜엍으 밀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이 지적한 이 글을 읽고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떠올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러하다. 밀이 <자유론>을 집필하며 계획했던 것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지적한 경제 분야에서의 과도한 통제 거부를 정치와 언론 분야에서 똑같이 적용하는 일이었다. 시장 원리에 의해 가격이 결국 적절한 수준으로 수렴되듯 의견이나 언론도 다수의 반론과 반박을 헤쳐 나옴으로써 마침내 뛰어난 것만이 남는다는 사고관은, 탁월한 의견을 보호하고 열등한 의견은 배제한다는 통제의 사고관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오늘날 조직에서 의견 교환이 기탄없이 오가면 오갈수록 의사 결정의 질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수많은 실증 연구에서 밝혀졌는데, 밀은 무려 150년 전에 그 사실을 확신했다. 이 지적은 또한 반론을 억제하는 일, 즉 과도하게 사상이나 신조를 억압하는 데 따르는 위험성과도 연결된다. 많은 반론을 견뎌 낸 언론이 뛰어난 것이라고 한다면, 반론을 봉쇄함으로써 언론의 시장 원리는 기능 부전에 빠지게 된다. 밀은 <자유론>에서 처형된 소크라테스나 예수가 현재는 위인으로 칭송받고 그들이 남긴 사상과 신조가 광범위한 분야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어느 시대의 '악'은 시대를 거치며 '선'이 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다시 말해 어떤 아이디어의 옳고 그름은 그 시대의 엘리트가 통제하는 대로 결정되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의 다면적인 사고를 거쳐 결정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같은 관점에서 밀은, 우리가 한창 논의하고 있는 다양성의 중요함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할만한 거리를 남겼다.

 

 

 

어떤 사람의 판단을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경우, 그 사람이 신뢰를 받게 된 것은 자신의 의견과 행동에 대한 비판을 항상 거리낌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고 옳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가능한 한 받아들여졌으며, 잘못된 부분은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스스로도 되짚어보고 가능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설명하기를 습관으로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제라도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다양한 의견을 두루 듣고 사물을 모든 관점에서 살펴보는 방법밖에 없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이외의 방법으로 진리를 얻은 현인은 없으며 지성의 특성을 보더라도 인간은 이 이외의 방법으로는 현명해질 수 없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집단의 문제 해결 능력은 동질성과 이율배반의 관계trade off에 있다. 심리학자 어빙 제니스 예일대학교 교수가 '피그스만 침공사건 (1961년 4월 미국이 훈련시킨1,400명의 쿠바망명자들이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쿠바 남부를 공격하다가 실패한 사건)', '워터게이트 사건(1972년 6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측근이 닉슨의 재선을 위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 했던 정치 스캔들)', '베트남 전쟁' 등 고학력 엘리트가 모여 극히 어리석은 결정을 한 다수의 사례들을 연구한 결과, 아무리 개인의 지적 수준이 높아도 동질성이 높은 사람이 모이면 의사 결정의 질이 현저히 저하된다는게 밝혀졌다.

 

제니스 교수의 연구 외에도 조직론에 관한 수많은 연구에서 다양한 의견에 따른 인지 부조화가 질높은 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나타났다. 요컨대 아무리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이라도 비슷한 의견이나 지향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지적 생산의 질은 더 낮아진다. 이때 필요한 존재가 바로 '악마의 대변인'이다. 악마의 댑견인은 다수파의 의견이 통합되어 가는 과정에서 대수롭지 않은 일을 세세하게 캐내어 결점을 찾는다. 이 결점을 통해 그때까지 간과했던 문제를 깨달음으로써 빈약한 의사 결정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막는다. 이 악마의 대변인이 극히 중대한 국면에서 효과적으로 기능을 발휘한 사례로 쿠바 사태를 꼽을 수 있다.

 

 

임기 2년차를 맞이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그 연락'을 받은 것은 1962년 10월 16일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연락의 내용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첩보 활동으로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이었다. 그날 오전 11시46분, CIA는 긴급 소집된 다수의 미 정부 고관에게 정식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지도와 지시봉을 손에 든 정보 전문가들은 많은 사진들을 보여 주면서 쿠바 미사일 기지가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상상도 못 한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는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모두 망연자실해 있었다'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소련이 미국과 지척에 있는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했다니!!

 

케네디 대통령은 대응책을 검토하기 위해 외교와 군사 전문가뿐만 아니라 쿠바의 상황에 정통한 상사원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소집해 나중에 엑스콤ExComm이라고 불리게 된 국가안정보장회의집행위원회Executive Committee of the National Securiy Council를 결성했다. 이 회의에 참가한 인원은 이후 12일동안 거의 잠 도 못자고 회의를 계속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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