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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정보통

밀그램의 아이히만 실험

by 서예랑(주) 수달 202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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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자유 의사가 있어 각자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미국 예일 대학교의 밀그램 교수는 이에 의심을 품었다. 이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밀그램 교수는 사회 심리학상 아마도 가장 유명한 실험일 '아이히만 실험'을 실시했다. 교양 곽정으로 심리학 과목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설사 수업 내용을 거의 잊었다 하더라도 이 실험만큼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실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문 광고를 내서 '학습과 기억에 관한 실험'에 참가하고자 하는 희망자를 널리 모집한다. 실험에는 광고를 보고 응모한 사람들 중에서 선택된 피험자 두 사람과 흰 가운을 입은 실험 당사자(밀그램 교수의 조수)가 참가한다. 피험자 두 명에게는 제비뽑기로 한 사람이 '선생' 역할을,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이 '학생'역할을 맡게 한다. 학생 역은 단어의 조합을 암기하여 시험을 본다. 선생 역은 학생이 답을 틀릴 때마다 학생에게 전기 충격을 가한다. 제비 뽑기로 역할이 결정되면 전원이 함께 실험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학생을 전기의자에 앉히고 묶는다. 학생의 양 손을 전극에 고정시키고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선생 역할을 맡은 사람은 옆방으로 들어가 전기 충격 발생 장치 앞에 앉는다. 이 장치는 버튼이 30개 달려 있는데 버튼은 15볼트로 시작해서 15볼트씩 높은 전압을 발생시킨다. 즉 마지막 버튼을 누르면 450볼트의 고압 전류가 흐르게 된다. 흰 가운을 입은 실험 당사자는 선생 역의 피험자에게 학생이 오답을 말할 때마다 15볼트씩 전압을 올리라고 지시한다.

 

실험이 시작되면 학생과 선생은 인터폰을 통해 대화를 나눈다. 학생이 가끔 틀린 대답을 말할 때마다 전기 충격의 전압이 서서히 올라간다. 전압이 75볼트에 달하면 그때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던 학생이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120볼트가 되면 '아프다', '충격이 너무 세다'라고 호소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실험은 계속 된다. 마침내 전압이 150볼트까지 올라가면 학생은 '더 이상은 못 견디겠어! 내보내 줘, 실험을 그만두겠어!, 실험을 거부한다니까, 살려주세요!' 라고 비명을 지른다. 전압이 270볼트에 이르면 학생은 단말마의 비명을 질러 대기 시작하고 300볼트에 이르면 '질문해도 이젠 대답하지 않을거야!, 일단 빨리 좀 내보내줘! 심장이 멈출 것 같아!' 하고 비명을 지르느라 더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이 상황을 보면서도 흰 가운을 입은 실험 담당자는 태연스럽게 지시를 계속 한다. '몇 초 동안 기다려도 대답이 없으면 오답으로 간주하고 충격을 가하세요'. 실험은 계속 진행되고 전압은 자꾸만 올라간다. 전압이 345볼트에 이르면 학생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그때까지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반응이 없어진 것이다. 기절한 것일까, 아니면.....?하지만 실험 담당자는 가차 없이 더욱 높은 전압 충격을 가하라고 지시한다.

 

사실은 이 실험에서 학생 역을 맡은 사람은 미리 짜 놓고 투입된 사람이다. 항상 이렇게 미리 짠 사람에게 학생 역을 맡게 하고 응모한 일반인 지원자가 선생 역을 맡도록 제비뽑기록 조작해 놓는다. 그리고 실제로는 전기 충격을 가하기 않고 미리 녹음해 둔 학생 역의 목소리가 인터폰에서 들려오도록 장치해 놓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전혀 알 리 없는 피실험자에게 이 실험 과정은 현실 그 자체다. 처음 만나 알게 된 죄 없는 사람에게 사실상 고문을 가하고 자칫하면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가혹한 현실 말이다.

밀그램

여러분이 이 실험의 '선생'입장이었다면 어느 단계에서 실험에 협력하기를 거부했을까? 밀그램 교수의 실험에서는 40명의 피험자 가운데 65퍼센트에 해당하는 26명이, 고통으로 절규한 끝애 결국은 기절한(것 처럼 보이는) 학생 역에게 최고 단계인 450볼트까지 전기 충격을 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인도적이고 가혹한 행위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갈등이나 저항감을 보이면서도 분명 생명의 위험이 우려되는 단계까지 실험을 지속했다.

 

이 정도로 많은 사람이 실험을 끝까지 계속한 이유는 무엇일까? 떠올릴 수 있는 가설은 '난 단지 명령 집행자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면서 명령을 내리는 흰 가운의 실험 담당자에게 책임을 전가했을 거란 것이다. 실제로 선생 역의 피험자 중 많은 사람이 실험 도중에 주저하거나 갈등을 보였지만, 실험 담당자에게 뭔가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대학 측에서 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납득하는 표정으로 실험을 계속 했다.

그렇다면 비인도적인 행동에 관여할 때 '권한을 가지고 자신의 의사로 직접 실행하는 감각'의 정도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밀그램 교수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이번에는 선생 역을 두 명으로 늘리고 한 사람에게는 버튼을 누르는 역할을, 또 한 사람에게는 대답이 맞는지 틀린지를 판단하여 전압 수치를 큰 소리로 읽는 역할을 맡기고 실험을 실시했다. 이들 중에서 버튼을 누르는 역할은 미리 섭외된 사람이므로, 진짜 피험자 역할은 대답이 맞는지 틀린지를 판단하여 전기 충격을 가할 전압 수치를 큰 소리로 읽는 것뿐이다. 실험에 관련된 역할이 최초 실험 때보다 축소되어 죄책감도 덜하다. 아니나 다를까, 450볼트까지 실험을 계속한 피험자는 40명 가운데 37명으로 93퍼센트나 되었고 이로써 밀그램 교수의 가설이 검증되었다.

 

이 결과는, 반대로 책임 전가를 어렵게 하면 복종률이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흰 가운을 입은 실험 담당자를 두 사람으로 하고 도중에 각자 다른 지시를 내리도록 한다. 150 볼트에 달한 시점에서 실험 담당자 중 한 사람이 '학생이 괴로워하고 있어. 더 이상은 위험해, 중지하자' 라고 말을 꺼내는 한편, 다른 한 명은 '괜찮으니까 계속하자'라며 피험자를 재촉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높은 전압을 가하며 밀어붙인 피험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실험을 계속할지 말지의 의사 결정은 진짜 피험자인(미리 짠 사람이 아닌) 선생 역에 큰 압력으로 다가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밀그램 교수의 '아이히만 실험'이 실시된 것은 1960년대 전반 미국에서였다. 이 실험은 구후 1980년대 중반에 이를 때까지 여러 국가에서 추가로 실시되었는데, 대부분의 밀그램 교수의 실험에서보다 높은 복종률을 나타냈다. 그러므로 이 실험 결과는 미국 고유의 국민성이나 특수한 시대 상황에서 비롯된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성질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밀그램 교수가 실시한 아이히만 실험의 결과는 우리에게 다양한 암시, 교훈을 던져 준다. 우선 관료제에 관해서다. 관료제라 하면 관청 등에서 기관에서 채택한 조직 제도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상급자 아래에 트리형으로 인원을 배치하고 권한과 규칙에 따라 실무를 집행하는 것이 오늘날의 관료제라 정의한다면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 조직이 관려제에 의해 운영된다고 할 수 있다. 밀그램의 실험은 악한 행동을 하는 주체자의 책임 소재가 애매하면 애매할수록 사람은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자제심과 양심의 작용이 약해진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심리 현상은 아주 위험하다. 조직이 커지면 커질수록 양심이나 자제심이 작동하기 어려워 진다면, 조직이 비대한 만큼 악행의 규모 또한 비대화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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